“투우”(鬪牛,とうぎゅう, Tōgyū, The Bullfight) - 이노우에 야스시(ゐノ上うへ靖やすし, Yasusshi Inoue)

“투우”(鬪牛,とうぎゅう, Tōgyū, The Bullfight) - 이노우에 야스시(ゐノ上うへ靖やすし, Yasusshi Inoue)

 

“성공도 실패도, 싸움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Only after the fight is over do success and failure take on meaning.)

(勝ちも負けも、闘いが終わって初めて意味を持つのだ。)

이노우에 야스시

시작하는 말

 

전후의 혼란과 재건의 그림자가 일본 열도를 짙게 드리운 1940년대 말 이노우에 야스시(井上 靖, Yasushi Inoue)는 한 편의 간결하고도 압축적인 단편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갈등과 공허 그리고 생존의 미묘한 윤곽을 정교하게 포착해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투우”(鬪牛, Tōgyū, The Bullfight)이다. 격렬한 싸움과 피의 잔상이 그려지는 전통적 투우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도 이 작품은 실제로 피보다 더 깊은 인간 심리의 교차와 정적을 응시한다. 전쟁 직후의 오사카를 배경으로 한 신문기자의 사업 기획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은 거창한 서사 없이도 삶의 본질적 긴장과 허무를 응축된 문체로 드러낸다. 이노우에는 절제된 문장 속에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무게를 동시에 담아내며 독자에게 ‘싸운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처럼 “투우”는 단순한 줄거리 이상의 문학적 성취로 일본 현대문학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결정적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1. 저자, 이노우에 야스시(ゐノ上うへ靖やすし, Yasusshi Inoue, 1907, 5. 7 ~ 1991. 1. 29)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1907–1991)는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주로 역사소설과 자전적 소설을 통해 일본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시즈오카현 이즈 지역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며 보냈고 평생 이즈를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여겼다. 이노우에 집안은 대대로 의원 집안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한국에 종군한 경력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규슈 제국 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교토제국 대학 철학과에 재입학하여 졸업했다. 문단에는 1930년 동인 시집 “일본해시인”을 통해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으며 1936년에는 “센터 마이니치”에 투고한 소설이 입선되며 소설가로서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마이니치 신문사 학예부에서 근무하며 기자 생활을 하다 1950년 단편소설 “투우”(鬪牛)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노우에는 ‘사냥총’(猟銃), ‘빙벽’, ‘시로방바’, ‘내 어머니의 연대기’ 같은 서정적이고 내면적인 작품부터 ‘돈황’, ‘누란’, ‘풍도’(風濤), ‘풍림화산’, ‘공자’ 등 동아시아 대륙과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한 방대한 역사소설까지 폭넓은 문학 세계를 펼쳤다. 특히 ‘풍도’는 고려 충렬왕과 김방경을 중심으로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다루며 일본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연결하는 드문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의 소설은 다수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었고 국내외에서 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받아 생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1991년 타계하였으며 장례는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집전했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자연, 역사,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으로 남아 있다.

 

2. 저작 동기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단편소설 “투우”(鬪牛, The Bullfight) 1949년 일본의 패전 직후 혼란과 회복의 경계에 서 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발표되었다.

 

1) 전후(戰後) 일본 사회의 공허와 인간 심리 탐색

 

이노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사회에 만연한 공허함, 불확실성, 물질적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투우”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배경으로 전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개인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어떤 가치를 붙잡는가”를 탐색하는 과정의 축소판이다.

 

2) ‘싸움’이라는 은유로 본 인간의 본질적 욕망

 

‘투우’라는 테마 자체가 하나의 상징적 장치다. 실제 피를 흘리는 투우가 아닌 도시에서 흥행을 기획하는 투우라는 설정을 통해 이노우에는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경쟁, 체면, 자존, 탐욕이라는 싸움이 인간 안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즉 전쟁은 끝났지만 인간의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통찰이 저작의 핵심 동기다.

 

3) 작가 자신의 전환점으로서의 작품

 

“투우”는 이노우에 야스시의 문학적 전환점이기도 하다. 그는 30대 후반에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이를 계기로 언론인에서 전업 작가로 전향하게 된다. 따라서 “투우”는 단지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삶 속에서도 “새로운 싸움”을 시작한 기점으로서 창작된 작품이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투우”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의 불안과 공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고자 했다. 투우라는 흥행을 둘러싼 인물들의 움직임은 체면, 욕망, 생존을 둘러싼 또 다른 전쟁을 상징하며 이는 전쟁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싸움을 은유한다. 이 작품은 단지 시대의 산물일 뿐 아니라 작가 개인에게도 문학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결정적 출발점이었다.

 

3. 시대적 배경

 

이노우에 야스시의 “투우”(鬪牛)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직후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가치관의 붕괴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1949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전쟁이 끝난 지 불과 4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 사회가 물질적 궁핍과 정신적 공허를 동시에 겪고 있던 현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당시 일본은 연합군의 점령 하에 정치와 경제, 교육과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많은 이들은 기존의 가치와 이념이 무너진 자리에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투우”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전쟁 전까지 절대적이었던 국가주의적 신념과 공동체 중심의 가치가 패전과 함께 와해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현실적인 생존과 개인의 욕망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벌이는 '투우 흥행'이라는 사업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체면과 성공에 대한 집착 그리고 새로운 질서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몸부림을 상징한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오사카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오사카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적 재건이 이루어지고 있던 도시 중 하나로 상업 중심지로서 자본주의적 가치가 두드러지게 작동하던 곳이다. 이러한 도시적 배경은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과 행위에 현실감을 더하며 전후 일본인이 처한 사회적 분위기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투우”가 발표된 시기는 일본 문학사적으로도 전후 문학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던 시기였다. 많은 작가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반성하고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사회적 공허를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이노우에 야스시 역시 이러한 문학적 흐름 속에서 절제된 문장과 냉정한 시선으로 인간 존재의 허약함과 복잡한 심리를 포착해냈다. 따라서 “투우”는 단지 하나의 단편 소설이 아니라 시대의 공기와 인간의 내면을 예리하게 반영한 전후 일본 문학의 상징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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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캐릭터들

 

이노우에 야스시의 “투우”(鬪牛, The Bullfight)에는 비교적 적은 수의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그의 내면과 역할이 전후 일본 사회의 특정 심리를 대변한다.

 

1) 쓰가미 신이치(津上 伸一, Tsugami Shin’ichi)

 

신문사 사회부 기자이자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쓰가미는 외부적으로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회적 성공에 대한 강한 욕망과 체면 의식에 휘둘리는 인물이다. 전후 사회의 혼란 속에서 안정적인 삶과 명예를 추구하며 ‘투우 흥행’이라는 일종의 모험에 뛰어든다. 그의 기획은 단순한 사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는 내면의 싸움을 상징한다. 그는 이 싸움을 통해 성공과 실패, 체면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싸움 그 자체보다 그 싸움이 주는 허무함을 경험한다.

그는 전후 일본 사회의 ‘중산층 남성’의 욕망과 불안 그리고 도덕적 모호함을 응축한 대표적 인물이다.

 

2) 스미코(澄子, Sumiko)

 

쓰가미의 연인이자 조용히 옆을 지키는 인물이다.

 

스미코는 말수가 적고 수동적이지만 단순한 조연 이상의 존재다. 그녀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동요하는 쓰가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한다. 겉으로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지만 쓰가미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미묘한 거리감과 불신을 품고 있으며 점점 그의 본모습을 냉정하게 관찰하게 된다. 작품 말미로 갈수록 그녀는 쓰가미의 내면에 자리 잡은 허영과 자기 기만을 직감하고 그와의 관계에 점차 정서적 단절을 느낀다.

스미코는 도덕적 중심이 흔들리는 남성 주인공을 관조하는 인물로 시대의 냉정한 현실 감각을 대변한다.

 

3) 나카타(中田, Nakata)

 

투우 흥행의 공동 기획자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나카타는 보다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성격의 인물로 쓰가미와 달리 흥행을 철저히 이익 중심으로 바라본다. 그는 싸움에서 승부보다는 돈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물로 전후 자본주의의 실용적 사고방식을 대표한다. 그의 존재는 이상과 체면을 좇는 쓰가미와의 대비를 통해 시대가 어떻게 인간관계를 ‘계산’의 대상으로 바꾸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나카타는 전후 일본 사회의 ‘경제적 현실주의자’ 상을 구현하며, 냉정한 현대적 인간상을 상징한다.

 

4) 투우와 싸움의 메타포

 

작품에 등장하는 실제 투우사나 황소는 인격화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상징적 캐릭터로 기능한다. 투우는 인간들의 허영과 체면, 욕망이 투영된 하나의 거울 같은 존재로 소설 내에서 인간성의 투사이자 싸움의 은유로 작용한다. 싸우는 황소들보다 이를 기획하고 관전하는 인간들이 더 치열하고 덧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투우’는 인물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상징적 장치다.

투우는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욕망, 그리고 싸움의 무의미함을 은유하는 비인간적 캐릭터이자 주제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투우”는 극적인 인물 변화보다는 정적이고 내면적인 갈등을 통해 전후 일본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인물 한 명 한 명이 전후 일본의 특정 가치관을 상징하며 그 관계는 곧 당시 사회의 구조적 긴장을 반영한다.

 

5. 주요 테마

 

이노우에 야스시의 “투우”(鬪牛, The Bullfight)는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기 속에서 인간 존재와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 작품으로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여러 층위의 주요 테마를 포함하고 있다.

 

1) 전후 인간의 불안과 공허

 

“투우”는 1949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직후 발표된 작품으로 전후 사회의 공허와 불안을 주된 정서로 삼는다. 등장인물들은 외형적으로는 일상으로 복귀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여전히 가치관의 붕괴와 존재의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다. 쓰가미를 비롯한 인물들이 추구하는 성공과 체면은 이러한 내적 공허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투우 흥행은 단지 흥행이 아니라 공허한 시대 속에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입증하려는 몸짓이다.

 

2) 성공과 체면에 대한 강박

 

이 작품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사회적 체면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다. 주인공 쓰가미는 명예롭고 성공적인 언론인으로 자리 잡기를 원하며 투우 흥행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그가 좇는 성공은 진실하거나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허상에 불과하다. 이 테마는 전후 일본 사회가 자본주의적 가치에 물들어가며 외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 테마는 "전쟁의 패배 이후 일본인은 무엇을 성공이라 부르게 되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3) 인간 존재의 허무와 자기기만

 

“투우”의 중요한 주제는 또한 인간 존재의 허무함과 자기 기만이다. 소설 내내 투우 흥행을 위해 분주했던 인물들이 마지막에 남는 것은 허탈감과 공허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뤘다’라고 믿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아무 의미 없었음을 깨닫는다. 이는 삶의 본질을 외면한 채 겉만 치장하는 인간의 자기기만을 고발하는 방식이다.

투우는 싸움이지만 실상은 싸우는 척하는 흥행이다. 이 ‘가짜 싸움’은 인간의 가짜 자의식과 닮아 있다.

 

4) 현실과 도덕의 괴리

 

작품에서는 성공을 위해 도덕이나 양심을 잠시 제쳐 두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전후 사회가 ‘생존’을 이유로 윤리적 판단을 보류하거나 무시하게 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쓰가미는 자신이 고상한 가치를 좇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체면과 돈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으며 독자는 이 괴리를 통해 현실에 굴복한 인간의 도덕적 무력함을 인식하게 된다.

 

5) ‘싸움’에 대한 철학적 성찰 - 투우의 메타포

 

‘투우’라는 설정은 단순한 흥미 요소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재된 경쟁 본능과 싸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강력한 은유다. 작품 속 투우는 피를 흘리지 않는 싸움이지만 이를 둘러싼 인간들은 피보다 더 진한 욕망, 체면, 불안을 흘린다. 이 싸움은 이기는 자도 지는 자도 모두 허무 속에 남겨진다는 점에서 전쟁과 그 이후에도 반복되는 인간의 내면적 전쟁을 상징한다.

황소보다 더 격렬하게 싸우는 것은 소설 속 인간들이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투우”는 전후 일본 사회의 가치 혼란과 인간 내면의 공허를 배경으로 성공과 체면에 대한 집착, 자기기만, 도덕적 타협, 그리고 존재의 허무를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투우’는 인간의 싸움 본능과 무의미한 경쟁을 은유하는 메타포로 작용하며 독자에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6. 전체 줄거리 요약

 

“투우”는 전후 일본 오사카를 배경으로, 신문사 사회부 기자인 쓰가미가 황소 두 마리를 이용한 ‘투우 흥행’을 기획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쓰가미는 평소 성공과 사회적 체면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던 인물로 전쟁 이후 공허한 현실 속에서 뭔가 큰일을 해내고 싶은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신문사의 지원을 받아 한 지방의 투우를 도시 흥행으로 끌어오자는 제안을 내놓고 공동 기획자인 나카타와 함께 ‘오사카 투우 대회’를 준비하게 된다.

 

처음에는 순조로워 보였던 기획은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과 윤리적 갈등에 부딪히며 삐걱대기 시작한다. 황소의 싸움을 상품화하는 일에 대한 내면의 저항, 관계자들의 계산된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이 기획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쓰가미를 점점 피로하게 만든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연인 스미코의 감정과도 점차 멀어지고 서로 간의 대화는 겉돌기만 한다. 스미코는 쓰가미의 체면과 성공에 대한 집착을 냉정히 바라보며 정서적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마침내 투우 대회가 열리고 사람들의 관심과 열기로 흥행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막이 내린 뒤 쓰가미의 마음속에는 성취감이 아닌 허탈감이 밀려든다. 흥행은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 일을 벌였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명확히 대답할 수 없다. 투우는 끝났지만 인간의 체면, 욕망, 허영이 만들어낸 이 ‘싸움’은 실제보다 더 공허하고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나가는 말

 

“투우”는 격렬한 싸움의 표면 아래에서 인간 존재의 침묵과 고독을 정제된 언어로 묘사한 수작이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전후 일본의 공허한 현실을 배경 삼아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선 인간의 불안과 모순을 탁월한 문체로 포착해낸다. 작품 속 투우는 단순한 흥행 기획이 아니라 욕망과 체면, 허영과 실패가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이 공간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묻지도 못한 채 침묵 속에 무너져간다.

 

이처럼 “투우”는 거창한 결말도 극적인 반전도 없이 마무리되지만 그 여운은 오히려 더 깊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독자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진정한 싸움은 투우장의 울타리 너머 인간 내면의 침묵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투우”는 단순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이며 일본 현대문학이 남긴 조용한 걸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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