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인의 방문”(Der Besuch der alten Dame)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노부인의 방문”(Der Besuch der alten Dame)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세상이 나를 창녀로 만들었으니, 이제 나는 세상을 창부촌으로 만들겠다.”

(Die Welt machte mich zu einer Hure, nun mache ich sie zu einem Bordell.)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들어가는 말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Der Besuch der alten Dame, 1956)은 인간의 도덕성과 정의가 돈 앞에서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품이다. 스위스 출신의 작가이자 극작가인 뒤렌마트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의 탐욕, 부패, 그리고 복수의 본질을 강렬하게 조명한다.

 

작품의 무대는 쇠락한 소도시 길렌(Güllen). 한때 번영을 누렸던 이 도시는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이때 젊은 시절 이곳에서 쫓겨났던 클레어 차하나시안(Claire Zachanassian)이라는 백만장자 여성이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마치 구원자처럼 등장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 가지 섬뜩한 제안을 내놓는다. 자신을 배신했던 옛 연인 알프레드 일(Alfred Ill)을 죽인다면 도시에 거액을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 희곡의 가장 강렬한 지점은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분노하며 제안을 거부하던 마을 사람들은 점차 돈에 눈이 멀어 도덕적 타협을 하게 된다.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돈이 정의를 살 수 있는가? 인간의 양심은 얼마나 쉽게 변질되는가? 뒤렌마트는 이 질문들을 통해 관객과 독자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도록 강요한다.

 

“노부인의 방문”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이 작품은 사회 전체가 공모하는 ‘정의의 왜곡’을 통해 현대 사회의 위선을 비판하며 뒤렌마트 특유의 블랙 유머와 냉소적인 풍자를 가득 담고 있다. 희곡이 진행될수록 마을 사람들의 태도 변화는 집단 심리와 도덕적 타락의 메커니즘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독자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긴다.

 

이 책은 단순한 극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조명하는 거울과도 같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과연 인간의 도덕성과 양심은 어디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노부인의 방문”은 이 질문에 대한 강렬한 경고이자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1. 저자,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1921. 1. 5 ~ 1990. 12. 14)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는 스위스의 극작가다. 그는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브레히트 등의 영향도 받으면서 그로테스크한 폭로나 쇼크적 효과를 통해 인식하는 작풍을 확립했다. 그는 무자비한 자세로 현대의 모럴을 추구하는데 극의 형식은 비영웅적인 희극이다. “천사 바빌론에 오다”, “미시시피씨의 결혼” 등을 발표하고 “노부인의 방문”(1956), 성공과 논문, 연극의 여러 문제로 주목을 끌었다. 과학과 정치 문제에까지 육박하는 허구의 희극 “물리학자들”에서는 브레히트와의 대결의 자세가 보인다. 근작으로는 “혜성”, “재세례파(再洗禮派)의 사람들” 등이 있다. 1990년 12월 14일 노이샤텔에 있는 저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는 스위스 태생의 독일어권 작가로서 전후 가장 위대한 드라마 작가로 평가된다. 뒤렌마트의 작품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영화화되는 등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사무엘 베케트나 오이게네 이오네스크와 더불어 현대 속의 고전 작가로 인정받는다. 뒤렌마트는 희비극의 장르를 발전, 정착시켰으며 신과 인간 구원의 문제, 자유와 정의의 문제 등 철학적 테마를 독특한 드라마 기법을 사용해서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실험한 작가다. 뒤렌마트는 자신이 관찰하고 성찰한 것을 그로테스크, 패러독스, 풍자와 아이러니, 유머를 통해 희극화함으로써 관객의 쓴웃음과 성찰을 자아내는 데 특별한 기량을 보였다. 그는 어떤 영웅적 결단도 내릴 수 없는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반성 외에는 없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뒤렌마트는 항상 작품을 통해서 시대의 문제에 정열적으로 반응했고 시대를 비추는 거울을 받쳐 드는 비평가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학계는 뒤렌마트를 현대의 고전 작가로 60세에 신화가 되어버린 존재라고 최고의 찬사를 던졌다. 작품 활동 외에도 뒤렌마트는 핵무기를 반대하고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을 지지하는 등 세계 평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2. 저작 동기

 

프리드리히 뒤렌마트가 “노부인의 방문”(Der Besuch der alten Dame, 1956)을 집필한 동기는 전후(戰後)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인간 본성의 타협 그리고 정의의 왜곡을 비판하는 데 있었다. 그는 특히 돈과 권력이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어떻게 변질시키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뒤렌마트는 전후 유럽 사회에서 개인의 도덕성이 집단 속에서 쉽게 희석되고 ‘책임의 분산’이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처음에는 도덕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단의 분위기에 휩쓸려 점점 도덕적 타협을 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나치 독일 시대에 많은 독일 국민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체제에 동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기도 하다.

 

작품 속 길렌(Güllen) 마을은 경제적으로 몰락한 도시로 오직 돈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상황이다. 뒤렌마트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도덕성을 타락시키고 돈이 곧 정의를 결정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풍자하고자 했다. "돈이 들어오면 정의가 따라온다." 마을 사람들이 클레어의 거액 제안 앞에서 점차 윤리를 포기하는 과정을 통해 돈이 사회적 정의를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단순히 한 개인의 부패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모하는 도덕적 타락’을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뒤렌마트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정의란 무엇인가? 복수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클레어 차하나시안은 개인적인 복수를 하면서도 이를 ‘정의의 실현’으로 포장한다. 반면 마을 사람들은 ‘윤리적 가치’를 내세우지만 결국 돈에 의해 그들의 정의는 변질된다. 이는 법과 윤리가 사회적·경제적 조건에 따라 쉽게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뒤렌마트는 스위스 출신이지만 독일 및 유럽 사회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유럽이 어떻게 전쟁 범죄와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경제적 부흥을 위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지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졌다. 나치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쟁 후에는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 부와 명성을 누렸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도덕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점차 변하는 과정은 전후 독일 사회에서 벌어진 도덕적 타협과도 연결된다.

 

이 희곡은 단순한 한 개인의 복수를 그린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모하여 윤리를 타협하는 과정과 돈에 의해 정의가 조작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뒤렌마트는 전후 사회가 직면한 도덕적 위기와 인간 본성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관객과 독자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3. 시대적 배경

 

프리드리히 뒤렌마트가 “노부인의 방문”(1956)을 집필한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사회이다. 이 작품은 전후(戰後) 독일과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의 도덕적, 경제적 상황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1) 전후 유럽과 경제적 회복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끝난 후 유럽은 폐허가 되었고 많은 국가가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독일은 전쟁의 책임을 지고 큰 혼란에 빠졌으며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전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1950년대에 접어들며 유럽은 경제적 회복을 시작했으나 도덕적 가치보다는 경제 성장과 실용주의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 점이 작품에서 ‘길렌(Güllen) 마을’의 모습과 연결된다. 길렌은 한때 번영했던 곳이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해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 부유한 여성인 클레어 차하나시안이 돌아와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윤리를 내세우지만 점차 돈에 의해 도덕성을 잃어간다. 이는 전후 독일과 유럽 사회가 경제적 회복을 위해 도덕적 책임을 망각하고 돈과 실용주의를 앞세우는 모습을 상징한다.

 

2) 전후 독일과 스위스의 역사적 현실

 

(1) 나치 전범과 도덕적 책임 회피

전후 독일 사회에서는 나치 부역자들이 전쟁 이후에도 책임을 면하고 다시 사회에 편입되는 사례가 많았다. 뒤렌마트는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클레어 차하나시안이 정의(복수)를 실현하려 하지만 사람들은 돈 앞에서 타협하는 모습은 전쟁 후 유럽 사회의 윤리적 딜레마를 반영한다.

 

(2) 스위스의 전쟁 중립과 경제적 이익

스위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나치 독일과 협력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뒤렌마트는 스위스 출신 작가로서 스위스 사회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도덕적 원칙을 타협하는 모습을 풍자하려 했다. 길렌 마을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 개인(알프레드 일)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전쟁 중 중립을 지키면서도 이득을 본 스위스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3) 냉전 시대와 서구 자본주의 비판

 

1950년대는 냉전(Cold War, 1947~1991)이 심화되던 시기로 서방(미영블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동방(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미국의 경제 원조(마셜 플랜)로 인해 자본주의적 가치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뒤렌마트는 돈이 윤리를 압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고 그 결과물이 “노부인의 방문” 이었다.

 

“노부인의 방문”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전후 사회의 도덕적 붕괴와 경제적 실용주의가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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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캐릭터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은 몇몇 핵심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각 캐릭터는 작품의 도덕적,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1) 클레어 차하나시안(Claire Zachanassian)

 

백만장자 노부인으로 복수의 화신이다. 과거 클라라 바셔(Clara Wäscher)로 부렸으며 길렌(Güllen) 출신으로 젊은 시절 알프레드 일(Alfred Ill)과 사랑했으나 그에게 배신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이후 여러 차례 결혼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백만장자가 되어 마을로 돌아온 후 알프레드 일을 배신한 길렌 사람들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알프레드 일을 죽이면 10억 마르크를 주겠다”라는 제안을 한다. 그녀는 신체적으로도 특징적이며 나무 의족과 의수(義手)를 가졌으며 이는 그녀가 살아온 고통과 변화를 상징한다. 처음에는 냉소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마을 전체를 자기 계획대로 움직이게 만들며 돈과 권력이 정의를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이다.

 

2) 알프레드 일(Alfred Ill)

 

과거 클레어를 배신한 남자로 마을의 희생양이 된다. 길렌에서 가장 유력한 상인이자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클레어와 연인 사이였으나 그녀가 임신했을 때 법정에서 그녀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다. 결국 클레어는 마을에서 쫓겨났고 알프레드 일은 그 덕분에 안정적인 삶을 누린다. 클레어가 돌아와 복수를 선언하자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신이 희생양이 될 운명임을 깨닫게 된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저항을 포기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퇴장한다. 개인의 비윤리적 행동이 사회 전체의 타락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3) 길렌의 시장(Bürgermeister, The Mayor)

 

처음에는 정의를 말하지만 결국 타협하는 인물이다. 그는 마을의 지도자로 클레어의 제안을 처음에는 강하게 거부하였으나 그러나 마을 경제를 살릴 기회가 생기자 점점 태도를 바꾸며 알프레드 일을 희생시킬 준비를 한다. 마지막에는 “우리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결정을 내린다”라며 마치 정의를 실현하는 듯한 태도로 일을 처형하려 한다. 정치인의 위선과 현실적 타협을 보여주는 인물로 돈과 권력 앞에서 쉽게 변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풍자하는 상징으로 도덕적 이상과 현실적 이익 사이에서 결국 현실을 선택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 준다.

 

4) 교사(Der Lehrer, The Teacher)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식인이다. 길렌의 고등학교 교사로 마을에서 가장 지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클레어의 제안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부당한지 인식하지만 마을이 점점 돈에 굴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절망한다. 술에 취해 알프레드 일에게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결국 자신도 마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작품 후반부에는 알프레드 일을 돕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지식인의 무력감과 도덕적 타협을 나타내며 양심이 있지만 결국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5) 신부(Der Pfarrer, The Priest)

 

종교적 도덕성을 대표하지만 결국 현실을 따르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알프레드 일을 보호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가 바뀐다. 클레어의 돈이 마을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지자 알프레드 일에게 도망치라고 조언하며 그를 포기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적 선택을 하며 종교적 도덕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종교가 현실적인 이익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도덕적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종교적 권위의 약점을 보여준다.

 

6) 마을 주민들(Die Güllener, The Townspeople)

 

처음에는 도덕적이지만 점점 타락하는 집단이다. 처음에는 클레어의 제안을 거부하고 알프레드 일을 보호하려 하지만 그러나 클레어의 돈이 마을에 들어올 가능성이 커지자 점점 소비를 늘리고 알프레드 일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마지막에는 마치 ‘민주적 결정’인 것처럼 투표를 통해 알프레드 일을 희생시키며 집단적 도덕적 타락을 보여준다. 그들은 집단 심리와 사회적 부패를 나타내는 존재로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 속에서 쉽게 도덕적 타협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후 독일 사회와 나치 부역자들의 책임 회피 문제를 반영하는 상징이다.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도덕성과 정의가 돈 앞에서 얼마나 쉽게 타락하는가’이다. 주요 캐릭터들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며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본성의 모습을 드러낸다.

 

5. 주요 테마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도덕성, 정의, 돈과 권력, 집단 심리 등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1) 도덕과 돈의 충돌

 

돈이 도덕성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

초반에는 마을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클레어 차하나시안이 “알프레드 일을 죽이면 10억 마르크를 주겠다”라고 선언하자 처음에는 거부하던 사람들도 점점 마음이 변한다. 마을 경제가 되살아나는 조짐이 보이면서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고 빚을 지기 시작하며 사실상 이미 알프레드 일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결국 돈이 도덕적 판단을 뒤엎고 공동체 전체를 타락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덕은 상황에 따라 쉽게 타협될 수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윤리적 기준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정의와 복수의 모호한 경계

 

클레어 차하나시안의 복수는 정당한가?

클레어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을 주장한다. 젊은 시절 알프레드 일은 그녀를 배신하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까지 했으며 그로 인해 클레어는 마을에서 쫓겨나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이제 그녀는 부자가 되어 돌아와 자신에게 가해진 불의(不義)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그녀의 방식은 돈을 이용해 사회 전체를 조작하는 것이며 결국 정의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불의(不義)가 된다. 그녀의 복수가 정당한가? 아니면 또 다른 부패인가? 정의와 복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돈과 권력을 통해 강요된 정의는 진정한 정의인가?

 

3) 집단 심리와 도덕적 타락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은 쉽게 타락한다.

"처음에는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기 시작했다." 길렌 마을 사람들은 초반에는 알프레드 일을 보호하려 하지만 점차 클레어의 돈 앞에서 도덕성을 포기한다. 개인적으로는 모두 죄책감을 느끼지만 집단 속에서는 쉽게 책임을 회피하며 결정에 동조한다. 마지막에 마을 사람들은 민주적 투표라는 형식을 이용해 알프레드 일의 죽음을 정당화한다. 이는 전체주의적 폭력, 나치 독일에서 일어났던 집단 심리, 그리고 전후 독일이 과거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과 연결된다.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분산되는가? 집단 속에서는 도덕적 판단이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가? 나치 독일에서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체제에 동조하게 되었는지를 연상시키는 요소이다.

 

4) 인간의 위선과 자기기만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쉽게 태도를 바꾼다.

"우리는 돈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마을 주민들의 자기 기만)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클레어의 제안을 거부하며 윤리적 우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점점 클레어의 돈이 마을에 유입될 가능성이 커지자 알프레드 일을 희생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결국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특히 시장, 교사, 신부 같은 사회 지도층 인물들이 점차 변하는 모습을 통해 권력자들이 어떻게 자기 합리화를 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 이익을 우선한다. 윤리적 선택도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다.

 

5)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

 

돈이 곧 권력이며, 경제적 부는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나는 돈을 가졌고 그래서 나는 법을 만들 수 있다."(클레어 차하나시안)

클레어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돈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는 절대적 권력자이다. 그녀는 법과 정의를 사고 사람들을 조종하며, 심지어 마을 전체의 윤리적 기준을 바꾼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권력이 어떻게 도덕과 법을 조작할 수 있는지를 비판하는 요소이다. 돈이 곧 정의가 되는 사회는 올바른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윤리적 판단도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노부인의 방문”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인간 본성과 현대 사회의 부패, 그리고 도덕성과 경제적 이해의 충돌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6. 줄거리 요약

 

“노부인의 방문”은 스위스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가 1956년에 발표한 희비극으로 도덕, 정의, 돈, 복수,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한때 번영했지만 지금은 가난에 시달리는 작은 마을 길렌(Güllen)에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잃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기회를 절실히 찾고 있다. 그러던 중 백만장자 클레어 차하나시안이 45년 만에 길렌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클레어는 이 마을의 출신으로 과거 알프레드 일과의 사랑에 배신당해 비참한 삶을 살았고 이제 부유해져 복수를 위해 돌아왔다.

 

클레어는 마을 사람들에게 10억 마르크를 기부하겠다고 제안하면서 그 대가로 알프레드 일을 죽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알프레드 일은 과거 그녀를 법정에서 배신하고 거짓 증언을 하여 그녀의 삶을 망쳤다. 클레어의 제안을 처음에는 거부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은 도덕적인 선택을 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마을의 상인, 경찰, 교사 등 주민들은 점차 클레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알프레드 일을 죽이는 대신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돈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알프레드 일은 점점 더 불안해지며 도망치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이미 바뀌었고 그는 절망 속에서 자신이 죽게 될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는 마을을 떠나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가로막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처형하기로 결정한다. 투표를 통해 마을 전체가 알프레드 일을 죽이는 것에 합의하며 그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이름 하에 희생당한다.

 

클레어는 마을 사람들이 알프레드 일을 죽이고 그녀가 요구한 대가를 받자 10억 마르크를 기부하고 마을을 떠난다. 이 모든 사건은 돈과 권력이 도덕적 선택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의"라고 합리화하며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도덕과 윤리는 쉽게 타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부인의 방문”은 복수와 정의, 돈과 도덕이 충돌하는 가운데, 인간 본성과 집단 심리가 어떻게 인간 사회를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나가는 말

 

길렌의 주민들은 처음에는 도덕적으로 살아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며 살인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돈이 들어오면 정의가 따라온다."

 

이 한마디 속에 작품의 모든 비극이 담겨 있다. 도덕과 윤리는 현실의 압박 앞에서 얼마나 쉽게 타협될 수 있는가? 돈과 권력 앞에서 우리는 과연 끝까지 정의를 지킬 수 있는가? 혹은 우리도 결국 길렌의 주민들처럼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타락해갈 것인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돈 앞에서 끝까지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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