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들”(The Dead) -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그의 영혼은 천천히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그는 눈이 우주 전체에 희미하게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 모두에게 마지막 종말처럼 희미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His soul swooned slowly as he heard the snow falling faintly through the universe and faintly falling, like the descent of their last end, upon all the living and the dead.)
시작하는 말
하얗게 내리는 눈은 말없이 세상을 덮는다. 굳이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아도 그것은 모든 것을 감싸안으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풍경을 변화시킨다.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은 바로 그런 눈처럼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가만히 내려앉는 이야기이다. 격정도 격변도 없이 그저 잔잔하게 흐르는 대화와 침묵 속에서 우리는 생과 사, 사랑과 상실, 기억과 망각의 경계 위를 걷는다.
이야기는 한 겨울 더블린의 연말 파티로 시작된다. 포근한 방 안의 웃음소리와 외투의 무게, 음악과 사람들의 숨결 속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그리움과 회한이 스며있고 무엇보다 ‘살아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조용한 질문이 있다.
조이스는 이 짧은 이야기 안에서 우리 각자의 얼굴을 비춘다.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말 한마디에 실린 감정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고 잊혔던 한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어느새 가브리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가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의 가슴에도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죽은 사람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에 남는 여운이며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며 차마 흘러내리지 못한 눈물이다.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문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걷는 하나의 여정이다. 조용히 마음을 열고 이 눈 속의 서사를 함께 걸어보자.
1. 저자, 제임스 조이스(본명 : 제임스 오거스틴 앨로이시어스 조이스 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 2. 2 ~ 1941. 1. 13)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이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아홉 살인 1891년에 첫 시인 '힐리 너마저‘(Et Tu Healy)를 썼는데 아일랜드의 독립투사인 찰스 파넬에 대해 썼다. 조이스는 킬데어에 위치한 클롱고스 우드 칼리지(Clongowes Wood College)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곳은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종교적인 성향이 강했고 남들에 비해 빠르게 월반했던 그는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1898년에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UCD)에 진학해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을 공부했다. 유럽 언어에 능통했던 그의 언어적 역량은 이미 그 당시부터 두각을 드러낸 모양이다. 특히 헨리크 입센의 희곡을 마음에 들어 해서 독학으로 덴마크어를 배우고 리뷰를 쓰기도 했고 입센에게 편지를 보내 답장을 받기도 했다. 1900년의 일이니 그의 나이 18세 때 일이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학교 신문에 글을 기고하거나 희곡을 두어 편 쓰기도 했는데 현재는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1903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로가 의학을 공부했는데 기술적인 프랑스어가 어렵다고 생각해 이를 관둬버렸다. 어학의 천재이긴 했지만 업계 용어는 불편한 모양이었나 보다. 1904년 조이스는 21번째 생일 때 쓰기로 마음먹은 스티븐 히어로(Stephen Hero)란 작품에서 기인한 자신의 미학적인 관점을 다룬 예술가의 초상이란 작품을 출판하려고 했지만 Dana라는 잡지에서 거절당했다. 결국 이 작품은 10년 후에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 된다. 단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스티븐 히어로 사이엔 원고에 꽤 차이가 있다. 이웃에 살던 개신교 소녀에 관한 언급 같은 것들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선 많이 빠졌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스티븐 디덜러스(Stephen Dedalus)인데 디덜러스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다이달로스에서 따온 것이다(참고로 아일랜드 사람이 듣기엔 꽤나 괴악한 성인 듯하다).
참고로 평생 떠돌이로 살았던 것치고 가정사는 의외로 순탄하다. 노라 바나클이란 여인과 뜨거운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해서 자식들도 키우고 딸의 정신병 문제로 갈등한 것 빼곤 금슬도 좋았다. 그런데 연애하는 중에도 대문호의 재능은 어디 가지 않는지 연애편지에서 나오는 상당히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음담패설이 아주 걸작이다. 이걸 읽으면서도 또 그걸 좋다고 받아 준 노라 바나클 조이스도 보통 여인은 아니었는지 세간에서 자기 남편에 대해 운운할 때마다 글쎄 나는 그이가 사실 글쟁이보다 음악가였으면 더 좋을 거 같은데라며 쿨하게 반응하곤 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연애편지는 그 내용의 솔직함(...) 뿐만 아니라 이 양반이 얼마나 신사였는지 그 안목의 품격과 격조를 보여주는 자료로 활발한 연구의 대상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불어닥친 유럽의 내셔널리즘 열풍이나 혹은 그에 반대 기류로 형성된 사해동포주의 류의 관념에 조이스는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어떤 사상에 얽매이길 굉장히 싫어했는데 덕분에 당대 모더니스트들의 기본 소양이었던 반유대주의는 물론 그의 글벗 다수가 알게 모르게 저질렀던 파시즘 예찬과도 일절 관련이 없으며 아일랜드 출신으로 중하류층의 삶을 소재로 했던 행적에서 알 수 있듯 엘리트주의, 계급주의와도 거리가 멀어서 후대의 독자들은 난해하다는 점만 빼면 아무런 껄끄러움 없이 그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다.
영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자 영문학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 율리시스는 읽은 사람보다 이 책으로 논문을 쓴 사람이 더 많을 거란 농담이 돌기도 한다. 이 말은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연구자들도 많았다는 뜻의 농담이기도 하다(사실 이런 표현은 잘 알려진 고전 서적에는 한 번씩 붙는 농담이긴 하다). 저명한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세 사람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와 더불어 제임스 조이스를 꼽았다.
대서양 서쪽에서 최고로 꼽히는 위대한 개츠비를 쓴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피츠제럴드의 첫 장편소설인 로맨틱 에고이스트는 교양소설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꽤 영향을 받았다. 다만 그 이후로는 피츠제럴드가 플래퍼 등을 다루는 등 완전히 현대적인 느낌으로 가는 바람에 갈리기에 두 사람의 작품은 전혀 다르다.
워낙에 글이 뛰어나다 보니 인용도 자주 되는 편이다. 영화 디파티드에서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나온 Non Serviam이란 말이 인용되기도 했다. 라틴어로 그뜻은 나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I will not serve)인데 원래는 루시퍼가 했다는 말로 종교적으로 불복종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였는데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가리키는 말로 조이스가 재해석했다. 현대 물리학에서 다루는 소립자 중 하나인 쿼크는 피네간의 경야에 나오는 단어에서 따온 용어이다.
전설적인 미디어 학자인 마셜 맥루한의 저작물에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이 종종 인용된다. 특히 그를 대표하는 작품인 “미디어의 이해:인간의 확장”에서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를 잊혀질 만할 때마다 주요 대목들을 언급하며 설명한다.
2. 저작 동기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가 “죽은 사람들”(The Dead)을 쓴 저작 동기는 그의 개인적 경험, 문학적 실험, 그리고 아일랜드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작품은 그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1914)의 마지막이자 가장 길고 깊이 있는 작품이다.
1) “마비”(paralysis)라는 주제의 집대성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 전체를 통해 아일랜드 사회의 정체, 무기력, 도덕적·정신적 마비를 그리고자 했다. 그는 아일랜드인들이 과거에 얽매여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선을 갖고 있었고 “죽은 사람들”은 그 주제를 가장 정제되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2) 개인적 경험의 반영
작품 속 가브리엘 콘로이(Gabriel Conroy)는 조이스 자신을 많이 닮은 인물이다. 조이스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 민족주의에 대한 복잡한 감정, 아일랜드 내 정치·문화적 갈등에 대한 거리감 등을 가브리엘을 통해 투영했다. 특히 그 아내 그레타의 과거 사랑에 대한 이야기(마이클 퓨리)는 조이스의 연인 노라 반나클(Nora Barnacle)의 실제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도 한때 젊은 시절에 요절한 연인을 잊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다.
3) 삶과 죽음, 기억과 존재의 철학적 탐구
조이스는 인간의 존재를 깊이 탐색하고자 했다. “죽은 사람들”은 단순한 연말 파티 이야기를 넘어 기억과 망각, 생과 사의 경계 그리고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 가능성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그는 인간이 진정한 ‘자기 인식’에 이르기까지 겪는 내면의 흔들림을 탐구하며 독자에게 ‘깨어남’의 순간을 체험하게 한다.
4) 아일랜드 사회에 대한 문학적 기록
조이스는 당시 더블린 중산층과 지식인 사회, 가톨릭교회의 위선, 민족주의의 이면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어 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아일랜드인의 초상을 그리고자 했고 “죽은 사람들”은 그 결론부에서 가장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죽은 사람들”은 조이스의 예술적 완성도, 개인적 정체성의 반영, 그리고 아일랜드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기록이라는 목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그것은 단편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시와 철학, 역사와 정서를 아우르는 조이스 문학 세계의 진정한 정수라고 할 수 있다.
3. 시대적 배경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소설 “죽은 사람들”(The Dead)은 1900년대 초반 아일랜드 특히 더블린의 중산층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적 배경은 작품의 분위기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고방식, 행동, 갈등을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1) 시간적 배경 : 1900년대 초 더블린(Edwardian Era, 약 1904년 전후)
“죽은 사람들”은 조이스가 1907년에 집필하였고 실제 시점은 1904년경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영국 식민 지배하의 아일랜드였으며 아일랜드 내 자치권(Home Rule)과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화되던 시기다. 작품의 주요 무대인 미스 머칸 자매의 연례 파티는 1904년 1월 6일 주현절(Epiphany) 저녁으로 설정되어 있다.
2) 정치·사회적 배경 : 아일랜드 민족주의와 식민지 현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반감과 민족주의 정서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수적이고 정체된 사회 구조 속에서 변화에 대한 저항과 무기력이 팽배해 있었다. 조이스는 이를 "정신적 마비“(paralysis)라고 표현했다. 작품 속 가브리엘은 영국식 교육을 받은 더블린 중산층 지식인으로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이모의 조롱을 받는 장면을 통해 식민지 지식인의 이중적 정체성을 보여준다.
3) 문화적 배경 : 보수적 가톨릭 중심 사회와 예술의 역할
아일랜드는 강한 가톨릭 문화와 전통적 가치관에 얽매인 사회였다. 이는 인간관계, 결혼, 죽음과 같은 주제들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조이스는 가톨릭 신앙, 도덕적 엄숙주의, 보수적인 가족제도 등에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작품 속 연례 파티에서 연주되는 전통 음악과 노래는 아일랜드 문화 정체성을 상징하며 한편으로는 과거에 갇힌 사람들의 심리적 풍경을 보여준다.
4) 생활 배경 : 중산층 실내 생활과 도시의 계급 구조
작품의 주요 무대는 더블린의 중류층 가정 내부다. 살롱에서 열리는 파티, 마차로 이동하는 거리 풍경, 호텔에서의 하룻밤 등은 당시 도시 중산층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안정되고 교양 있어 보이지만 내면에는 상실감, 공허함, 인간관계의 소외가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배경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 가브리엘이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함께 떠올리는 장면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결집된다. 눈은 아일랜드 전체를 덮으며 변화하지 못하는 정체된 사회를 말없이 감싸는 동시에 독자에게 깊은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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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캐릭터들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The Dead)에는 다층적 상징과 정서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작품의 중심 주제인 기억, 사랑, 죽음, 정체성 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1) 가브리엘 콘로이(Gabriel Conroy)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대학 강사이자 저널리스트, 상당히 교양 있고 지적인 중산층 남성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다소 허영심이 있지만 이야기 말미에는 자기 성찰과 감정의 깊은 변화를 겪는다. 아내의 과거 연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으며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2) 그레타 콘로이(Gretta Conroy)
가브리엘의 아내로 파티 후 호텔에서 마이클 퓨리(Michael Furey)라는 옛 연인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과거의 진실한 사랑에 대한 회상이 가브리엘의 내면을 뒤흔들고 이야기는 그레타의 기억을 통해 절정에 이른다.
3) 줄리아 머칸(Julia Morkan)
파티의 주최자 중 한 명으로 가브리엘의 이모다. 나이 많은 구세대 여성으로 음악 교사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보수적인 아일랜드 가톨릭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의 쇠약함은 아일랜드 문화의 쇠퇴와 마비를 상징하기도 한다.
4) 케이트 머칸(Kate Morkan)
줄리아의 자매로 역시 파티 주최자 중 한 명이다. 조금 더 활발하고 건강한 모습이지만 역시 과거를 중시하고 현재의 변화를 불편해하는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
5) 메리 제인 머칸(Mary Jane Morkan)
줄리아와 케이트의 조카로 음악가다. 그녀는 젊고 교육받은 여성으로 예술과 전통 사이에서 갈등하는 새로운 세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6) 말린 형제(Freddy Malins)
파티 손님 중 한 명으로 항상 술에 취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엄마와 함께 참석하며 익살스럽지만 사회적 무능과 인간적 연약함을 드러낸다. 조이스가 표현한 아일랜드인의 ‘마비’ 상태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7) 말린 부인(Mrs. Malins)
프레디의 어머니다. 술 버릇이 있는 아들을 걱정하는 평범한 어머니로 아일랜드 전통 어머니상의 모습이다.
8) 미스터 브라운(Mr. Browne)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 파티 손님이다. 유쾌하고 사교적인 성격이지만 때때로 무례하거나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한다. 식민지 시대의 모순된 문화적 정체성을 은유하는 인물이다.
9) 바틀 더 가정사역자(Bartell D’Arcy)
테너 가수다. 파티 중 노래를 요청받지만 건강 문제로 거절한다. 그러나 호텔에서 가브리엘과 그레타에게 마이클 퓨리 이야기를 끌어내는 간접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10) 마이클 퓨리(Michael Furey)
작중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정서적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레타가 젊은 시절에 진정으로 사랑했던 연인. 병약했으나 죽음을 무릅쓰고 그녀를 만나러 왔던 인물로 회상된다. 그의 존재는 가브리엘에게 자신이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사랑’의 깊이를 자각하게 만든다.
이 인물들은 겉으로는 평범한 중산층 더블린 시민처럼 보이지만 조이스는 그들의 대화, 기억, 침묵 속에 아일랜드 사회의 깊은 병리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절묘하게 녹여낸다. 단편 소설이지만 인물 구성은 마치 한 편의 희곡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
5. 주요 테마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The Dead)은 짧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로 매우 풍부한 의미층을 가진 작품이다. 작품의 서사와 상징, 인물 간의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1) 죽음과 기억(Death and Memory)
작품의 핵심 테마다. 죽음은 단지 육체적인 소멸이 아니라 과거의 사랑, 상처, 후회가 남아 있는 기억 속의 죽은 자들을 의미한다. 그레타의 옛 연인 마이클 퓨리의 이야기는 죽음이 과거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모순을 보여주며 가브리엘에게 ‘산 자보다 더 강한 죽은 자의 존재감’을 일깨운다. 마지막 장면에서 창밖으로 내리는 눈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위에 고르게 내리는 것”으로 묘사되며 생과 사의 경계가 흐려지는 세계관을 상징한다.
2) 정체성과 자기 인식(Identity and Self-Awareness)
가브리엘은 자신을 교양 있고 세련된 지식인이라 여긴다. 하지만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된 뒤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이는 개인적 정체성의 붕괴이자 성장 없는 삶에 대한 자각이며 결국 조용한 각성과 겸허로 나아가는 철학적 여정을 의미한다.
3) 정신적 마비(Paralysis)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 전체를 통해 아일랜드 사회의 무기력함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비판한다. 가브리엘을 비롯해 파티에 모인 인물들은 과거에 안주하거나 의미 없는 반복 속에서 살아간다. 누구도 과감하게 현재를 돌파하지 못하고 무언가에 갇혀 있거나 멈춰 있는 상태다. 파티라는 ‘축제’의 형식조차 사실상 정체된 아일랜드 문화의 은유로 작용한다.
4) 사랑과 상실(Love and Loss)
사랑은 이 작품에서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기억으로 다가온다. 가브리엘의 사랑은 현실적이고 습관적인 반면 그레타의 옛사랑은 짧고 격렬했으며 죽음으로까지 이어진 낭만적 사랑이었다. 이는 ‘진정한 사랑’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상(ideal)일 수도 있다는 슬픈 통찰로 이어진다.
5) 과거와 현재의 충돌(The Past vs. The Present)
작품 전체는 한밤의 파티 속 현재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과거의 회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조이스는 개인의 과거(사랑, 실수, 죽음)와 민족의 과거(전통, 신앙, 식민 역사)를 함께 겹쳐 놓고 ‘현재는 과거의 그림자 안에 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시간의 층위를 한 폭의 서정적인 이미지(눈)로 통합한다.
6) 삶과 죽음의 연속성(Continuity of Life and Death)
눈은 작품 전체를 덮는 상징으로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삶과 연속되는 흐름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살아 있는 이들이 느끼는 슬픔, 사랑, 상실은 모두 죽은 이들의 흔적 위에서 빚어지는 감정이다. 이처럼 “죽은 사람들”은 단순한 서정적 이야기로 시작해 독자의 내면 깊숙이 침투하는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으로 확장되는 작품이다.
6. 줄거리 요약
1900년대 초 더블린의 겨울밤, 머칸 자매 케이트와 줄리아 그리고 그들의 조카 메리 제인은 매년 열리는 연말 파티를 연다. 가족, 친구, 음악가들이 모여 전통과 화합의 시간을 보내며 조용한 유쾌함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모들의 조카이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브리엘 콘로이는 아내 그레타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다. 그는 학식 있고 세련된 중산층 남성으로 자부심이 높고 파티 내내 사람들과 어울리며 정중하게 행동하지만 내심 자신이 아일랜드 전통에서 조금 거리를 둔다고 느낀다. 특히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과의 대화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가브리엘은 저녁 만찬 자리에서 건배사를 하며 아일랜드 전통과 여성들의 미덕을 칭송하지만 이 또한 겉치레로 보일 정도로 공허하다. 파티가 끝난 뒤 그는 아내 그레타와 함께 호텔로 돌아가며 그녀의 모습에 낭만적인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레타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고 호텔 방에 들어선 뒤 과거의 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는 10대 시절 병약한 청년 마이클 퓨리와 나눈 진정한 사랑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러 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레타의 고백을 들은 가브리엘은 충격을 받는다. 아내가 결혼 이후 자신에게 보여준 사랑보다 더 깊은 감정을 누군가에게 느꼈다는 사실에 그는 무력함과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그는 마이클 퓨리처럼 죽음을 무릅쓸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처음으로 자신을 깊이 성찰한다.
이야기의 마지막 가브리엘은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 눈은 더블린 전역,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모두 위에 조용히 내린다. 그는 이제 삶과 죽음, 기억과 현재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고 조용한 각성과 겸허 속에 자신을 맡긴다.
나가는 말
창밖으로 내리는 눈은 더 이상 단지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존재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영혼의 상징이 된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기억되는 사람과 잊힌 사람, 그 모두에게 평등하게 덮이는 하얀 침묵, 조이스는 그 고요 속에 가장 큰 목소리를 숨겨놓았다.
가브리엘은 한순간 모든 확신을 잃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자가 된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의 깊이를 깨달으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그 고요한 각성의 순간,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다.
“죽은 사람들”은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우리의 오늘을 빚어낸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 위에 조용히 눈은 내린다. 슬픔을 위로하고 사랑을 감싸며 우리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이야기를 덮고 난 후에도 그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잊힌 이름들, 지나간 시간,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눈처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안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깨닫는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증거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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