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까오량가족”(紅高粱家族) - 모옌(莫言)
“사람은 결국 피를 흘리며 살아가는 존재다. 피가 없으면 사랑도, 증오도 없다.”
(人终究是流着血活着的，没有血，就没有爱，也没有恨.)
(Ultimately, a person lives by bleeding. Without blood, there is neither love nor hatred.)
시작하는 말
모옌의 “홍까오량가족”은 단순한 가족사나 향토소설을 넘어 중국 근현대사의 폭력과 저항, 생명과 죽음을 강렬한 언어와 상징으로 풀어낸 서사다. 작품의 무대인 산둥 지방의 붉은 수수밭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농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침략자에 맞선 저항 정신을 품은 거대한 상징이다. 이 붉은 수수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적 중심축으로 민족의 고통과 삶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홍까오량가족”은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공동체의 기억을 호출하고 역사 속 고통을 문학으로 끌어올린다. 모옌은 민담, 환상, 리얼리즘을 넘나들며 ‘중국적인 것’을 세계문학의 언어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소설은 개인의 욕망과 폭력, 생존을 통해 중국인의 생명력과 모순된 현실을 함께 조명하며 인간과 땅, 가족과 국가, 삶과 죽음을 통찰하는 문학적 장(場)을 형성한다.
1. 저자, 모옌(莫言, 1955. 2. 17 ~ )
모옌(莫言, 1955. 2. 17. ~ )은 본명 관모예(管谟业)로 “말하지 않는다”라는 뜻의 필명을 사용하며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중국 당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중국 국적 작가 중 한 명으로 독창적인 문체와 강렬한 서사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문화대혁명 시기 어린 시절 학업을 중단하고 노동자로 일한 그는 1976년 인민 해방군에 입대한 후 문학에 눈을 떴고 해방군 예술대학과 베이징사범대 루쉰문학원 등에서 수학했다. 1981년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로 등단하고 1987년 장편소설 “홍까오량 가족”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1987)으로도 제작되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모옌은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민담과 신화, 역사, 현실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서사 세계를 구축했으며 “중국의 포크너” 혹은 “중국의 카프카”로 불린다. 대표작으로는 “홍까오량 가족”, “술의 나라”,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개구리” 등이 있다.
그는 한때 체제 순응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개구리” 등에서 강제 산아 정책을 비판하고 표현의 자유와 내면의 자유를 강조하는 등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 내 극우 세력에게 ‘반애국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등 정치적 입장을 둘러싼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특별한 해명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 저작동기
모옌은 “홍까오량가족”을 통해 자신의 고향인 산둥성 가오미 지역의 역사적 경험과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그는 1930년대 중국이 일제 강점과 군벌 간 내전, 민중의 저항 등으로 격동의 시기를 겪는 동안 폭력과 사랑,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묘사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닌 "민속적 기억과 환상적 리얼리즘"이 결합된 문학 실험으로 전통 민담, 구전 설화, 개인의 가족사적 경험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모옌은 인터뷰에서 "피 냄새 나는 현실"을 쓰되 그것이 단순한 비판이나 교훈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원초적 에너지와 생명력을 드러내는 방식이길 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 소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 문학계가 허용한 표현의 자유 확대와도 맞물려 있으며 작가는 억압되었던 기억을 문학적으로 해방하는 시도를 이 작품을 통해 실현했다고 평가된다. 요컨대 “홍까오량가족”은 역사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남는 인간의 본능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탐색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3. 시대적 배경
“홍까오량가족”의 주요 배경은 1930년대 중국 산둥성 가오미 지역으로 중국이 일제 침략과 군벌 간 내전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이다.
1) 중일전쟁(1937–1945)의 전야 또는 초기 국면
일본 제국주의는 만주사변(1931) 이후 중국 동북 지역을 점령하고 점차 화북 지방까지 침략 범위를 넓혀갔다. “홍까오량가족”은 이러한 일본군의 침략과 맞서 싸우는 민병대와 지역 주민들의 무장 저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2) 군벌 혼전(軍閥混戰)과 지방 무장세력의 난립
당시 중국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여러 군벌 세력들이 각 지역을 장악하고 무력 충돌을 반복했다. 작품 속 주인공 일가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때로는 비정한 선택을 하는 현실에 놓인다.
3) 농민 공동체의 전통과 변화
당시 중국 농촌은 전통적인 유교적 질서와 가족 중심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외세의 침략과 사회 불안으로 인해 기존 가치관이 해체되고 새로운 생존 방식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모옌은 이 과도기를 민속적 서사와 신화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인간 본성의 극단을 탐색한다.
이처럼 “홍까오량가족”은 국가적 혼란, 외세 침략, 농민 공동체의 붕괴와 저항이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개인과 가족, 민중이 겪는 삶과 죽음의 드라마를 서사화한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라기보다 20세기 초중반 중국 현대사의 축소판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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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캐릭터들
모옌의 “홍까오량가족”(紅高粱家族)은 강렬한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는 소설로 현실과 전설, 폭력과 사랑이 혼재된 세계를 구성한다.
1) 나(화자)
소설의 화자이자 1인칭 시점의 손자, 주된 사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조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후일담으로 서술하며 가족의 역사와 지역 공동체의 전통을 서사화한다. 전통과 개인의 기억,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서술 구조를 통해 이야기 전체에 민속 서사의 분위기와 시간적 거리감을 부여한다.
2) 더우광(豆官) - 조부
화자의 조부이자 실제 주인공 격 인물, 본래는 가오미 지역의 마적(산적) 출신이지만 후에 민병대 지도자로 성장한다. 폭력과 생존이 공존하는 시대 속에서 비범한 용기와 통솔력을 발휘하며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가족과 마을을 지키려 한다. 사랑, 증오, 복수, 연대 등 인간 본성의 양면을 모두 드러내는 인물로 모옌 특유의 ‘거칠지만 강렬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3) 어머니(더우광의 아내, 이름 없음)
더우광의 아내이자 화자의 조모, 본래 양조장 주인의 아내로 강제로 시집갔으나 더우광의 습격으로 인해 그와 사랑에 빠지고 동행한다.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당시 사회 질서와 전통을 거스르며 자율적 사랑을 실현하는 인물이다. 소설 전체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많지 않지만 그녀는 주체적인 행동과 욕망 생명력을 대표하는 중심 여성 캐릭터이다.
4) 일본군 장교 및 군벌들
이름 없는 적으로 등장하며 지역을 침탈하고 주민을 학살하는 폭력의 체현이다. 그러나 단순한 악역이라기보다는 시대적 비극과 외세 침략의 맥락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각 인물은 선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과 욕망, 생존의 본능 속에서 움직이며 인간과 시대의 깊은 그림자를 보여준다. 특히 조부와 조모는 중국 농민의 원초적 생명력과 저항 정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5. 주요 테마
모옌의 “홍까오량가족”(紅高粱家族)은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1930~40년대 일제강점기 하의 중국 농촌을 배경으로 전쟁과 마적, 살육, 저항 등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를 묘사한다. 등장인물들은 죽음과 맞닿은 삶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이 드러난다. 폭력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생존과 존엄, 사랑을 위한 선택지로 묘사된다.
1) 사랑과 욕망의 생명력
조부와 조모의 사랑은 당시의 도덕과 질서, 여성의 종속적 지위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며 삶에 대한 본능적 긍정이다. 사랑은 피와 폭력 속에서도 생명을 잉태하고 가문을 유지시키는 생명의 원천으로 표현된다.
2) 역사와 민중의 기억
“홍까오량가족”은 공식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는 민중의 삶과 투쟁을 서사로 복원한다. 화자의 회고와 민속적 상상력은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를 결합해 민중의 목소리로 다시 쓴 역사를 제시한다.
3) 자연과 공동체의 상징으로서의 '홍까오량'
‘홍까오량(붉은 수수)’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장치다. 붉은 수수는 생명, 피, 저항, 정열, 자연의 순환을 모두 포괄하며 중국 농민 공동체의 뿌리 깊은 생명력을 시적으로 상징한다.
4) 국가 권력과 개인의 갈등
작품 속 민중은 국가의 보호자도 질서의 수혜자도 아닌 외세와 군벌, 검열과 억압에 희생당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체제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고통받는 중국 민중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테마는 모두 모옌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과 결합되며 작품의 문학적 깊이를 더한다.
6. 전체 줄거리 요약
모옌의 장편소설 “홍까오량가족”(紅高粱家族)은 1930~40년대 중국 산둥성 농촌을 배경으로 전쟁과 폭력 속에서 피어나는 한 가족의 사랑과 생존을 그린 작품이다. 화자인 손자는 조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그들의 삶과 투쟁을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이야기는 화자의 조부인 더우광과 조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더우광은 마적 출신으로 폭력과 혼란이 일상화된 시대에 지역 민병대를 이끌며 저항의 상징이 된다. 조모는 양조장 주인의 아내에서 더우광과 사랑에 빠진 강인한 여성으로 시대와 사회의 억압을 넘어서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생명력과 저항의 상징으로 작용하며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는 원동력이 된다.
소설은 일제 침략과 내부 권력 투쟁이라는 격변의 시대 속에서 민중의 고통과 저항을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붉은 수수’는 자연과 생명, 피와 저항을 상징하며 이야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프이다. 전쟁과 폭력, 사랑과 욕망이 뒤섞인 복합적인 현실 속에서 인물들은 인간 본연의 원초적 감정과 생존 본능을 드러낸다.
또한 작품은 공식 역사에서 배제된 민중의 기억과 목소리를 복원하며 개인과 공동체가 겪는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낸다. 국가 권력과 외세 침략 앞에서 무력하지만 굴하지 않는 농민들의 삶이 깊이 있게 그려져 있다.
“홍까오량가족”은 중국 현대문학의 중요한 작품으로 모옌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과 민속적 서술이 어우러져 시대의 상처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가 얽힌 이 소설은 중국 농민의 강인한 생명력과 저항 정신을 상징하며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나가는 말
“홍까오량가족”은 단순한 역사 재현이나 민족주의적 신화가 아니다. 이는 폭력과 혼돈 속에서도 삶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붉은 수수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피의 서사다. 모옌은 환상과 현실, 전설과 기록을 넘나들며 ‘말하지 않음(莫言)’의 침묵 속에서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무엇이 한 가족, 한 민족, 한 개인을 파괴하면서도 동시에 견디게 하는가? 그 대답은 전쟁 속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을 기억하는 말 없는 이야기 속에 있다.
오늘날 “홍까오량가족”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통의 기억이 문학에 새겨질 때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성찰이 된다. 우리는 모옌의 수수밭을 지나며 피로 얼룩진 과거를 직시하고도 끝내 삶을 붙잡는 인간의 강인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침묵하는 자의 이야기야말로 가장 깊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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