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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마음의 창'인가?

by 이삭44 2023.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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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음의 창'인가?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얼굴은 마음의 그림이며, 눈은 그 그림의 해설자"라고 주장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눈이 '마음의 창문(oculus animi index)'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눈동자 동작을 통한 초기 치매 진단 가능성, 사람 성격이 동공을 둘러싸고 있는 홍채의 미세 패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도되곤 한다. 하지만 두뇌학자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기보다 공학적 실패작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1. 구조적인 눈의 잘못된 설계?

우선 눈의 전체적인 구조가 잘못 설계되어 있다. 빛은 각막과 동공을 통해 망막에 닿는데, 빛을 감지하는 '광수용 세포'들은 놀랍게도 빛이 들어오는 방향이 아닌 망막 후반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엔 수많은 세포층과 망막 내부 혈관이 있어 바깥세상에서 들어오는 영상들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그림자가 생긴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엔 그런 그림자들이 전혀 없다. 왜 그럴까? 구체적으로 인간의 두뇌 작용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가 어떤 방법을 통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뇌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영상들의 시간적 차이를 분석한다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외부 세상의 물체는 대부분 움직임으로 시간적 변화가 있겠지만 눈 내부 혈관 그림자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두뇌는 단순히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믿음으로 원래 영상에 있던 수많은 그림자를 깔끔히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2. 변화무쌍한 눈 운동

그런데 외부 세상에도 바위나 나무같이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 눈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단속적 안구 운동'이라는 미세 안구 운동을 통해 눈은 계속 움직이고, 덕분에 망막에 닿는 외부 세상 물체의 영상은 망막 내부에서 생기는 그림자와는 달리 수시로 변한다. 두뇌의 변화는 바로 존재성을 의미하므로 눈은 그런 외부 세상의 물체를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신비로운 눈의 설계

새롭게 발견된 눈과 뇌를 연결하는 시신경들

설계가 잘못된 것 같은 눈의 망막이 감지한 시각적 정보를 두뇌로 전달하는 데 또 다른 공학적 문제가 발생한다. 광수용 세포가 망막 후반부에 있다 보니 그 세포에서 나오는 시신경은 어딘가 망막 한 부분을 파고 지나가야만 한다. 이렇게 파인 부분에선 당연히 빛을 감지할 수 없다. 바로 맹점(盲點)이다. 우리는 맹점이라는 시야의 상당히 커다란 부분에선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엔 그런 블랙홀이 없다. 이것 역시 두뇌의 역할 덕분이다. 두뇌는 망막에 보이는 블랙홀이 사실 외부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마치 컴퓨터 자판에서 'ctrl-c''ctrl-v'를 누르듯 맹점 주변 배경을 복사해 블랙홀 안을 채운다. 눈은 마음의 창도, 마음의 해설자도 아니다. 눈은 세상의 해석자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과 두뇌가 해석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믿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