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이길 수 있는 전쟁
1. 겁주는 ‘화면 속 치매’… 약물치료 가능한 初期를 불치병처럼 묘사한다.
영화·드라마 속 치매 환자는 실제와는 다르다.
엉뚱한 것을 충고하는 ‘화면 속 의사’ - 약으로 진행 늦춘다고 하고선 회사부터 빨리 관두라고 조언… 화면 밖 의사 ‘회사를 왜 그만둬?’
맹수 같은 '화면 속 치매 노인' - 며느리 머리 쥐어뜯고 욕설…
그런 행동은 일부 환자에 국한되며 한두 달 약물 치료하면 호전된다.
“좀 지나면 컴퓨터도 못 하고, 전화도 못 하게 돼, 물건 정리도 안 돼, 급기야 아무것도 못 하게 되지, 가족이 누군지, 내가 누군지 점점 모든 기억이 다 지워지게 되지." 2004년 개봉한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 의사가 치매에 걸린 주인공 수진(손예진)에게 하는 말이다. 수진은 얼마 안 있어 의사 말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2. 치매에 대한 오해와 치료법
치매는 영화나 드라마 단골 소재다. ‘기억이 사라진다.’ ‘어른이 아이처럼 변한다.’는 치매 증세가 극적인 요소로 활용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치매는 극 중에서 ‘절망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2011년 방영된 드라마 ‘천일의 약속’의 주인공 서연(수애)은 치매 진단을 받고 ”그러니까 저는 이제부터 약은 먹어도 별 볼 일 없이 말라가는 호두속 알처럼 뇌가 쪼그라들어 어처구니없는 바보가 됐다가 5~6년 안에 죽는다는 얘기죠“라며 절망한다. 그리고 서연도 얼마 안 있어 어이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상태가 된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와 ‘천일의 약속’ 주인공이 걸린 치매는 ‘가족형 알츠하이머 치매’다. 유전적 요인이 원인인 치매로 진행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들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고 수개월 만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족형 알츠하이머 치매가 전체 치매 중 1%밖에 안 되는 희귀 치매이고, 다른 치매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빠르긴 해도 약으로 이를 충분히 늦출 수 있다. 김희진 한양대 의대 교수는 “가족형 알츠하이머 치매도 초기부터 꾸준히 약을 먹으면 5~10년이 지나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라며 “드라마, 영화에선 10~15년에 걸친 치매 증상이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된다”라고 지적했다.
치매 판정을 받고 절망하는 극 중 인물 대부분이 치매 초기 상태라는 것도 시청자가 미처 생각하기 힘든 부분이다. 영화, 드라마 속 인물 대부분이 가벼운 건망증이 반복돼 병원을 찾았다가 치매 통보를 받는데, 이들의 상태가 중증이 아니라 초기라는 것이다. 초기 치매는 약만 꾸준히 먹으면 수년이 지나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 치료 방법을 묻는 주인공에게 의사는 “약을 먹으면 진행을 좀 늦출 수는 있지만 그것뿐이야. 회사 다니시나? 빨리 그만두시게”라고 답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답변이다. 김 교수는 “약만 먹으면 지금처럼 회사에 다니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하는 게 맞는 답변”이라며 “치매 상태만 따지면 주인공은 이른 시기에 치매를 발견한 매우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극 중에서 행패를 부리는 치매 환자의 공격적인 행동은 어떨까. 2011년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 등장하는 치매 노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심한 욕을 하고, 썩은 음식을 준다며 밥상을 뒤엎고, 며느리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이런 행동은 실제 치매 환자가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와 다른 점도 있다. 김기웅 국립 중앙 치매센터장은 “치매 환자의 공격적인 행동은 일부 환자에게서만 나타나고, 그것도 한두 달 약물치료를 받으면 금방 상태가 호전된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처럼 치매 환자의 공격적인 행동이 전혀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 센터장은 “극 중에서 치매가 다소 과장되게 비극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소재가 극적으로 활용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치매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시켜 달라고 일일이 요구하기는 어렵다”라며 “암(癌)은 치매보다 극 중에서 훨씬 더 많이 나오지만 암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미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희진 교수는 “드라마 ‘천일의 약속’이 인기를 끌 때에는 치매 검진율이 확 올라가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반대로 치료를 포기하는 치매 환자도 있었을 것”이라며 “드라마·영화를 보고 치매에 대한 오해를 하지 않기 위해선 국민이 치매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3. 노인성 우울증, 치매로 誤認 하기도
우울증부터 보이는 ‘가성치매’
인지장애·기억력 감퇴 보여도 뇌세포는 정상… 완치율 80% 정도이다.
경북 경주에 사는 김 모(69) 씨는 1년 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갑자기 기억력이 감퇴했다. 처음에는 아들과 딸 전화번호와 통장 위치 등을 기억하지 못하더니 몇 달 후엔 말투가 어눌해지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치매라고 판단한 자녀가 김 씨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러나 김 씨의 병은 치매가 아닌 ‘노인성 우울증’이었다.
노인성 우울증은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등 인지장애 증상이 치매와 흡사해 ‘가성치매(假性癡�·pseudo-dementia)’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실제 치매와 가성치매는 발병 원인과 시기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치매는 뇌세포 손상이 원인인 데 반해 가성치매는 가족의 죽음 등 갑작스러운 사건 등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치매는 물리적 원인이 있지만 가성치매는 정신적 문제라는 것이다.
또 치매는 발병 시기가 애매하고 증상이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지만 가성치매는 ‘○달 전’ 등으로 비교적 증상의 발현 시기가 명확하고 증상 악화 속도도 빠르다. 환자가 어느 날 눈에 띄게 기력과 의욕이 떨어지고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면 가성치매일 가능성이 크다. 증상이 나타나는 순서도 다르다. 치매 환자가 주로 인지 기능 저하를 먼저 경험하고 이에 따른 우울증을 겪는 데 반해 가성치매 환자는 불면, 초조함, 식욕 저하 등 우울증 증상이 먼저 나타난 후에 인지 기능 저하가 따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성치매는 뇌세포 파괴 등 복구 불가능한 피해가 없는 정신병이어서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치율이 80% 이상이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706만 6,201명) 가운데 치매 환자는 70만 5,473명으로 추정되며, 치매 유병률은 10.0%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이다. 또한 추정 치매 환자 대비 의료기관에서 치매 진단 및 치매 진료를 받은 환자(치매상 병자)의 비율은 93.7%였다.
마치는 말
앞으로도 치매 환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4년 100만 명, 2039년 200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넘어설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65세 이상 25%가 치매 환자이거나 ‘예비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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