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화물 숭배’ 종교
10여년 전인 2013년은 인간의 두뇌 과학 역사에 기억될 만한 해였다. 1월엔 유럽연합이 ‘인간 뇌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HBP)’를 10년간 10억 유로(약 1조4천200억 원)를 지원하는 두 가지 과학 연구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택했다.
1. 인간 두뇌 연구 프로젝트
유럽의 두뇌 연구 프로젝트는 유럽이 과학 초강국이었던 예전 명성을 되찾으려는 야심과 자존심을 걸고 추진한 사업이다. 그 시기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월 국회 연설에서 미국이 앞으로 10년간 30억 달러(약 3조9천900억 원)를 투자해 ‘뇌 기능 지도(Brain Activity Map·BAM)’를 완성시킬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HBP와 BAM은 기본적으로 철학적 배경이 다르다. 두뇌를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두뇌의 기본 원리는 조직적 구조에서 온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두뇌 뉴런(신경세포) 1000억 개가 서로 연결된 모든 경로를 알아내고 분석한다면 마치 책을 읽듯 뇌 안에 저장된 정보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유럽연합 HBP의 기본 가설이다. 미국의 BAM은 뇌 정보가 훨씬 더 역동적으로 저장되며 처리된다는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러기에 ‘조직’보다는 뇌의 ‘기능’ 지도를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 대한민국의 현실
유럽과 미국의 계획을 보면 부러움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연간 예산이 수십억원에 불과한 초소형 ‘한국뇌연구원’ 하나 설립하는 데 10년 넘게 걸린 대한민국이기에 부러움은 당연하겠지만, 무슨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태평양 섬 원주민들 사이엔 ‘화물 숭배’라는 종교가 있다. 또한 ‘미군 숭배 종교’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장비와 화물을 가지고 온 미군을 관찰한 원주민들은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군인들이 바쁘게 무선 장비를 다루고, 활주로를 뛰어다니며 깃발을 흔들자 하늘에서 비행기가 날아와 음식과 신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전쟁이 끝나고 더 이상 배달되지 않는 화물을 그리워하던 원주민들 사이엔 활주로를 청소하고 나무로 비행기와 무전기를 만들고 군인들이 했던 행동을 따라 하면 다시 화물이 도착할 것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세계적인 연구는 땅 파서 거창한 연구소를 짓고 우리끼리 세계 최초라 주장하고, 왕년에 노벨상 탄 백인 할아버지 초대해 1시간 강연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한국도 그들을 따라 ‘한국형 인간 뇌 프로젝트’와 ‘한국형 뇌 기능 지도’가 거론될 것이다. 2023인 오늘 유럽과 미국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과라고 하는 것이 억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그럼 우리나라는 시도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 현대판 화물 숭배
과거 우리나라 정부에서 ‘신지식인’, ‘창조 경제’ 등 정부에서 아무리 ‘한국형 스티브 잡스 만들기’, ‘한국형 저커버그 키우기’ 캠페인을 한다고 수능과 학원 수업에 찌든 대치동 아이들 머리에서 갑자기 창의력이 튀어나올 리 없다. 과거 천재로 인정받던 송유근, 가장 최근엔 서울 과학고 자퇴한 10세 천재 백강현 등 기본적인 인재 관리도 못하고 창의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사고적, 관리적인 문제에 봉착한, 기본 자세와 마인드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이 한다고 형식적으로 따라 하는 모방식 과학이 남태평양에 새로 생겨난 한국형 현대판 ‘화물 숭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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