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독서 논술, 고전 읽기] 플라톤 ‘파이돈’ 죽음 앞에서 당당했던 소크라테스

by 이삭44 2023. 12. 13.
728x90

플라톤 파이돈죽음 앞에서 당당했던 소크라테스

 

플라톤(Plato)과 파이돈(Pythagoras)은 고대 그리이스의 두 큰 철학자 및 수학자로 각각 특유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플라톤과 파이돈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고, 서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1. 플라톤의 '파이돈

 

1) 플라톤(Plato)

플라톤 '파이돈'
플라톤 '파이돈'

플라톤(B.C. 427~347년경)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표적인 그리이스 철학자 중 한 명으로, 특히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많은 철학적 논점에 관해 저술하였다. 플라톤 저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그의 대화편이다. 대화 형식의 저서를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플라톤은 파이돈부터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에서 독립하여 이데아론이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학설을 제창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국가(Republic)""타이마이오스(Timaeus)" 등이 있다. 그의 철학은 이상적인 국가와 영혼의 구조에 관한 이론, 이데아(아이디어)에 대한 개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의 고전 파이돈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상으로부터 구별되는 소위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 이 작품부터라고 하며 이는 영혼의 불사론(不死論)이다.

 

2) 파이돈의 대화

 

파이돈(B.C. 417?- ?)은 소크라테스의 애제자로서 소크라테스 최후의 날의 상황을 친구인 에케크라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소크라테스는 해 질 무렵, 사형집행 때까지 주로 시미아스와 케베스라는 두 사람의 피타고라스 학도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태연자약하여 평소와 조금도 다른 바가 없었다. 한편 그 대화를 듣는 편이었던 제자들은 "금방 웃으며 떠드는가 하면 곧 눈물을 흘린다"라는 식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혼은 육체라는 침침한 유리를 통하여 보는 것이므로 진리를 좀처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참다운 지()를 사랑하는 자(철학자)는 살아 있을 때부터 육체를 정화하여 영혼의 감옥이라 할 만한 육체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즉 살면서 죽음을 행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었을 때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서 플라톤은 영혼의 불사(不死)를 증명하기 위하여 이데아의 생각을 끌어낸다. 이데아는 우리가 현실의 개체를 현실의 개체로 인정할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데아의 원인설이 영혼 불사론의 제1 전제가 된다. 그런데 눈()은 눈으로서 눈의 이데아가 현실적인 눈의 원인인 동시에 눈의 이데아는 그것과 본질적인 관계에 있는 냉()의 이데아도 받아들여 그것과 반대 관계인 열()의 이데아를 배척한다. 뜨거운 눈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2 전제이다.

 

그런데 혼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욱이 현실의 생명은 생명의 이데아가 원인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생명의 이데아와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리하여 눈이 냉()의 이데아와 반대되는 열()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영혼은 생명의 이데아와 반대되는 죽음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에 불사인 것이다. 이것이 이데아 원인설에 의한 불사의 증명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근거로 하여 태연하게 독배를 마셨는가. 거기에는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정의의 확신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플라톤은 윤리적 근거로서 이데아를 인출하여 파이돈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태연한 죽음의 근거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2. 소크라테스의 사상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육체가 죽어갈수록 영혼은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그는 끝없는 대화로 깨달음을 주려 했으나 시민들에게 반감을 사고 고발당해 투옥되었다. 하지만 그는 영혼은 영원할 것이라 여겼기에 독이 든 잔을 과감히 들이켰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감옥에서 친구, 제자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플라톤이 기록한 것이다. 한 달의 옥살이가 끝나고 독약을 마시기로 되어 있던 날,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찾아와 슬퍼하는 이들을 오히려 격려하고 위로하였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인간과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볼까요? 그는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이 죽을 때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 인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육체는 죽을지라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학적 생각을 깊이 하는 데 있어 육체가 방해가 된다고 믿었다. 죽음이 육체적 감각으로부터 영혼을 해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도 인간이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다가 흰색의 물체가 휙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것은 귀신이 분명하다'라고 생각했다면 정말로 세상에 귀신이 존재하는 것일까? 데카르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감각이 불확실하다고 생각했기에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확실히 보고 느낀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러한 데카르트 이론에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 오늘의 작품 '파이돈'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이와 같은 생각의 토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일까? 철학(philosophy)'지혜(sophia)''사랑(phil)'하는 것이다. 우리는 '철학'이라고 하면 명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당시에 '철학''대상의 본질을 끝까지 찾아낸다'라는 동사(動詞)로서의 뜻을 가졌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끝없는 진리 탐구의 정신으로 본질을 찾을 때까지 파고드는 힘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1) 이야기 하나

이른 아침 아테네 시내를 걷던 소크라테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해결되지 않는 어떤 문제에 맞닥뜨린 것이다. 그는 제자리에 멈춰 계속 생각했다. 생각이 막히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낮이 되고 저녁이 되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그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얼마나 오래 있는지 지켜보겠다며 그 옆에 자리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소크라테스는 자리를 뜨지 않았고, 아침이 되어서야 그곳을 떠났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라는 깨달음을 가진 철학자이다. 그는 어떤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즉 진리에 도달하려면 대화를 통해 자기의 무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테네 시민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저마다 자기 의견이 진리인 것처럼 떠들고 다니는 걸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무엇을 모르는지 알 때까지 몰아붙이는 대화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반감(反感)을 느낀 사람들이 그를 고발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독배를 마시게 된 것이다.

2) 이야기 둘

그림 감상
그림 감상


미술관에서 모녀(母女)가 어떤 그림을 감상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사진 속 그림을 눈여겨보라.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우스꽝스럽기 그지없고 때로는 괴상해 보인다. 화가는 감각에 사로잡히면 대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눈을 통해 받아들이는 시각(視覺)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생각을 그림에서처럼 수많은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죽어서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진정한 철학적 생각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일까? 소크라테스 생각처럼 영혼은 육체와 달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한쪽이 커지면 다른 쪽은 줄어들고, 차가워지는 것이 있으면 뜨거워지는 것이 있는 것처럼 육체가 죽어감에 따라 영혼은 점차 되살아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그의 생각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영혼 불멸을 믿었기에 죽음을 피하지 않고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인 죽음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려면 소크라테스처럼 굳은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외세(外勢)의 침략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 조상들도 무언가 확실한 믿음을 가졌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기꺼이 목숨을 던졌던 것이다.

 

마치는 말

 

우리(여러분)는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가? 자기 인생을 걸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면 저와 여러분은 인생과 인류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오늘부터 무언가를 공부할 때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연습을 해보라. 그럴 때 여러분의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사고력(思考力)도 확대되는 것이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남들이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낼 때 시도하는 실험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당시엔 철인이었고, 21세기엔 창의적 인재이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성경 잠언2511절 참조)

이벤트/프로모션 크리스마스 특가 (~12/24)
 

COUPANG

쿠팡은 로켓배송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hyoung44 페이퍼 :: 유페이퍼 (upaper.kr)

 

hyoung44 페이퍼

예수교장로회 우리교회목사, 대신대학교교수,대구두뇌상담 연구소대표, (사)나눔과기쁨2440대표,사회복지사,언어치료사, NLP전문가, DISC전문가, 대구시교육청 학부모 강사.

hyoung44.upaper.kr